MUSIC..
Home

호프

12:09

호프를 찾아보다(재밌나요) 토마토 프사인 어떤 블로그에 홀린 듯 들어가게 됐는데 공지에 이런 글이 있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
.
.

2017년 A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A는 충격으로 직장생활 대인관계에서 문제를 겪는다. A는 끝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지만 매번 실패로 돌아간다. 결국 트위터 계정에 동반자살 모집글을 게시한다. B와 C가 연락을 취한다.
셋은 짧은 논의 끝에 울산에서 자살을 하기로 결정한다(B와 C의 거처가 있는 곳이다). 방 하나를 빌려 질소가스와 헬륨가스를 마시는 방법으로 끝을 낼 것이다. 계획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A는 자살하는 방법이 나와 있는 블로그를 단톡방에 공유하고 B는 질소가스 1통과 스타렉스 1대를 준비한다. 그렇다면 C는? C도 무언가를 준비했겠지만 그게 무엇인지 여기서 드러나진 않는다. 약속의 날이 찾아온다.
약속 시간이 되자 셋은 태화강역에 모습을 드러낸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라타 미리 알아놓은 가게들을 순회하며 비닐봉지, 청테이프, 호스, 케이블 타이, 칼, 운동화 끈, 가스를 차례대로 구비한다. 방에 들어왔을 때 시간은 10시를 넘겼고, 어쩐지 이쯤에서 술이라도 한잔 마셔야만 할 것 같은데, 셋다 술과는 인연이 없다. 가스통과 호스로 연결된 비닐봉지 3개를 제작하고 마지막 잠을 청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야기에서 다소 당혹스럽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 B와 C 두 사람이 뒤척이다 잠에 빠져든 순간, A가 독단적으로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당최 왜? C가 도중에 이를 알아채고 제지한다. C의 개입으로 일이 틀어지자 A는 불같이 화를 낸다. 그러자 C는 네가 무의식중에 바닥을 쿵쿵 내리찍었어, 아랫층에서 신고가 들어올까봐 깨울 수밖에 없었어 라고 대답한다. 말하는 C의 태도가 아주 차분했기 때문에 A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아침이 되어서야 셋은 제대로된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때는 B에게 너무 많은 공포감과 후회가 엄습했고, 그래서 자신의 비닐을 벗어던지는 한편 옆에 있던 C의 비닐까지 벗겨버렸다. A는 구할 필요가 없었다. 먼젓번의 시도로 가스가 많이 새는 바람에 정신이 말똥했던 것이다.

이 사건은 2019고합241 자살방조미수 사건으로 법원에서 다뤄졌다. 다음은 판결문의 마지막이다.

(4) 공과금 몇 만원이 없어 단전된 싸늘한 월세 방에서, 몇 달치 치 월세가 밀려서, 누군가에게 배신당해서, 사랑하는 이가 죽어서, 억울한 일을 당해서, 아무도 곁에 없어서… 누군가 생을 끝내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수많은 이가 무수한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그저 관성적으로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죽는다. 살인과 강간이 끊이지 않고, 매일 서너 명이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익명이라는 베일 뒤에 숨어 저주를 퍼붓고, 서로 무시하고, 외면하고, 홀대하고, 핍박하고, 착취하는 이 세상을 두고 차마 아름답고 살만한 곳이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모진 삶을 계속 이어나가는 이유는 세상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세상이 부조리하고 엉망진창임에도 우리가 미련스럽게 살아가는 이유는, 그것이 무릇 모든 숨탄 것들의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살고 싶다. 그 절대적이고 원초적인 욕망을 넘어설 수 있는 고통이, 이처럼 자주, 이처럼 도처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생활고로, 우울증으로 세상에서 고립된 채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잘 살고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5) 자살을 막으려는 수많은 대책과 구호가 난무한다. 그러나 생을 포기하려 한 이의 깊은 고통을 우리는 제대로 공감조차 하기 어렵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밖에서 보기에 별 것 없어 보이는 사소한 이유들이 삶을 포기하게 만들듯, 보잘것없는 작은 것들이 또 누군가를 살아있게 만든다. 삶과 죽음은 불가해한 것이다. 어스름한 미명과 노을이 아름다워서, 누군가 내민 손이 고마워서, 모두가 떠나도 끝까지 곁을 지켜준 사람에게 미안해서, 이 험한 세상에서 지금껏 버텨온 자신이 불쌍하고 대견해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비록 하찮아 보일지라도 생의 기로에 선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대책은, 그저 그에게 눈길을 주고 귀 기울여 그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믿음을 그에게 심어 줄 수만 있다면, 그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삶 역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한 개의 이야기인 이상,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그 이야기는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재판장 판사 박주영, 판사 김동석, 판사 황인아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살고 싶다

 

댓글

Loading

© 2026 hyezoprk. All rights reserved.